1950년 6월 25일 새벽, 대한민국 해군 백두산함이 대한해협에서 북한 침공함을 격침시키며 6.25 전쟁 최초의 해상 승리를 거뒀다. 광복 후 해군 장병들이 월급의 10%를 모아 구입한 단 한 척의 군함으로 이룬 이 역사적 승리는, 북한의 부산 상륙 작전을 저지하며 전쟁 초기 절체절명의 위기를 막아낸 숭고한 희생정신의 상징이다. 100발의 포탄만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조국을 지켜낸 백두산함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광복 후 해군 창설과 백두산함 건조의 기적적 스토리
광복 직후 대한민국 해군은 말 그대로 무(無)에서 시작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동안 해군다운 해군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46년 손원일 제독을 중심으로 해군의 원형이 되는 조직이 창설되었지만, 군함 한 척 없는 해군은 이름뿐이었다.
그러나 해군 장병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1949년부터 해군 장병들이 월급의 10%씩을 기부하기 시작했고, 해군 가족들은 삭발 의연금을 모았으며, 전국민이 성금을 보내왔다. 이렇게 모인 15,000달러에 정부 지원 45,000달러를 합쳐 총 60,000달러로 미국에서 2차 대전 퇴역함을 구입했다.
놀랍게도 구입한 배의 원래 이름이 "White Head"(백두)였다는 사실은 운명적이었다. 한국 해군 장병들이 직접 하와이로 건너가 녹슨 퇴역함을 수리하고, 3인치 포를 장착하며, 괌에서 포탄 100발을 구입해 완성한 백두산함은 1950년 4월 9일 한국에 도착했다. 진해부터 여수, 목포, 군산, 인천까지 전국 순회 퍼레이드는 광복 후 첫 군함에 대한 국민들의 자부심과 감격을 보여주었다.
6.25 전쟁 실제 시작과 대한해협 전투의 전말
일반적으로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38선 침공으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새벽 3시 30분부터 북한 해군의 해상 침공이 먼저 시작되었다. 북한은 육상의 탱크 부대와 동시에 동해안과 부산 지역 상륙 작전을 통해 후방을 교란하려는 양동 작전을 펼쳤다.
6월 25일 정체불명 선박의 남하 정보를 접수한 백두산함은 긴급 출격했다. 승조원들은 모두 실전 경험이 전무했고, 보유한 포탄은 100발이 전부였으며, 실사격 훈련조차 불가능해 나무 포탄으로만 모의훈련을 실시했던 상황이었다. 추가 보급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조건이었다.
울산 해상에서 정체불명의 북한 선박과 조우한 백두산함은 600-1,000명이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침공함임을 확인했다. 6월 25일 자정부터 26일 새벽까지 완전한 어둠 속에서 진행된 대한해협 전투는 레이더 없이 육안으로만 확인하며 근접전투로 벌어졌다. 어둠과 경험 부족으로 양측 모두 명중률이 낮았지만, 백두산함의 포탄이 결정적으로 북한 선박을 명중시키며 연달아 타격을 가해 침몰시키는데 성공했다.
대한해협 전투 승리가 한국사에 미친 결정적 영향
대한해협 전투 승리는 단순한 해군의 첫 승리가 아니라 6.25 전쟁 초기 판도를 결정지은 전략적 대승이었다. 북한의 부산 상륙 작전을 저지함으로써 7월 1일 미군의 부산 상륙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후방 교란 작전을 원천 차단했다. 만약 북한이 부산 상륙에 성공했다면 한국전쟁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오늘날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안타깝다. 일반적으로 6.25 전쟁 하면 북한의 일방적 남침과 후퇴만을 떠올리지, 해상에서의 치열한 전투와 승리는 간과되고 있다. 해군이 초기 방어에서 기여한 결정적 역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실정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는 말처럼,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알아야 할 기본적 소양이다. 현재를 만들어준 선조들에 대한 감사와 기억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책임이다. "처음에 시작이 나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하고, 지금의 내가 바로 이후의 시간을 또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인식이야말로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연속성의 핵심이다.
100발의 포탄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승리를 거둔 백두산함과 해군 장병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결코 공짜가 아님을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적 교훈이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기억하고 전승함으로써 선조들의 희생에 보답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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